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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넷플릭스 ‘이런 엿같은 사랑’ 볼만한가?

작성자 unme1 · 2026년 08월 16일

약간의 스포를 가지고 있으니, 참고!!

1. 들어가며

이런 엿같은 사랑이라는 제목 쉽게 잊혀지기 힘든 제목이다.
끈적끈적 달고 싶으면서도 한 번 물리면 뗴기 어렵고, 결을 보면 결대로 당기는 맛이 없다는 뜻이다. 넷플릭스 신작 ‘이런 엿같은 사랑’의 제목은 그 어감 그대로다.

달짝지근한 만큼 곁에 두기 어려운 한 남녀의 동거를 표현으로 압축해낸 것이다.
글을 쓰고있는 현재, 여배우 하영의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런 엿같은 사랑’ 리뷰 시작한다.


2. 작품의 뼈대 — 엿마을, 검사, 그리고 복싱 코치

극의 좌표는 명확하다.

사건을 쫓던 검사 고은새(하영)는 어느 날 기억을 잃은 채 엿마을에 눌러앉게 되고, 그 마을 출신의 복싱 코치 장태하(정해인) 앞에 ‘자칭 남자친구’라는 다소 황당한 전제로 등장하면서 동거가 시작된다.

모지혜 작가의 원안은 기본적으로 〈로미오와 줄리엣〉형의 마을 공동체 로맨틱 코미디에 누아르적 범죄 서사를 덧씌운 이중 구조다. 엿마을이라는 폐쇄적 공간 안에서, 한 개인이 외부 세력(상길 조직)의 압력에 휘둘리면서도 그 마을의 식구들과 문제를 풀어내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것만 놓고 보면, 뼈대는 견실하다.

  • 전반 ⅓: 고은새의 기억상실, 장태하의 불법 동거, 두 사람의 다툼과 설렘. 코미디 톤으로 안정적으로 잡혀가는 구간.
  • 중반 ⅓: 상길 세력의 위협 본격화, 장태하 신분(전직 사건당사자)의 진실이 드러나며 서스펜스가 무게를 더한다. 장면과 장면 사이의 인과가 가장 빡빡해야 할 영역이다. 여러 문제들이 발생되나 대부분 고구마 없이 진행된다.
  • 후반 ⅓: 사건의 반전, 고은새의 기억회복, 마을 전체의 결집. 결말로 향해한다.

극본의 큰 단위 설계는 이렇듯 무너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 단위와 단위 사이의 이음새

3. 좋은 점 — 극본의 골격과 하영의 성장 그래프

3-1. 극본의 골격은 닳지 않았다

모지혜 작가는 ‘엿마을 사람들 단순히 좋은 사람으로만 머무르지 않게 한다’고 김장한 감독과 함께 의도했다. 그 의도는 명백히 살아 있다. 엿마을 가족들이 처음에는 고은새를 경계하다가 점차 자기네 식구처럼 맞아들이는 곡선, 그리고 장태하가 외부인의 위치에서 마을의 일원으로 흡수되는 곡선을 두 개의 평행 로맨스 라인으로 끊임없이 교차시킨다. 이것 자체는 한국형 정서 멜로의 정석을 넘어서는 시도와도 읽힌다. 노정도 작가의 기존 텍스트와 다른 결의 무게감을 부여하려 한 흔적이 보이는 대목이다.

3-2. 영상미는 분명 살아 있다

김장한 감독 특유의 과장된 조명 대비, 도시에 가까운 한적한 마을 풍경을 압축해놓은 와이드 숏, 그리고 액션 한가운데서 분홍색과 주황색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옷 색채 대비는, 이 작품이 ‘로맨틱 코미디’라는 라벨 안에 감각주의적 영상 언어를 한 겹 덧씌우고 있음을 알려준다. 일본에서의 만남씬, 마을 회의 장면, 폭우 속 추격 장면, 마지막 화의 광장 장면 등에서 촬영 강윤순·현승훈의 카메라워크는 분명 시청자의 시선을 잡아끌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연출의 빈 곳이 더 슬프게 느껴지는 것이다.

3-3. 하영, 이인자에서 여주로의 도약

내가 이 작품에서 가장 의미 있다고 본 지점은, 하영의 위치 이동이다. 넷플릭스 〈이두나!〉에서 그녀는 친구 ‘김진주’로 등장하며, 한없이 밝고 자율적인 이두나(수지) 옆에서 견제자로 기능했다. 늘 좋은 역할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조연의 자리였다. 그런데 ‘이런 엿같은 사랑’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첫 번째 이름 표기 앞에 ‘주인공’이라는 카드를 직접 짊어졌다. 검사 고은새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말이다.

처음 몇 회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캐릭터는 의도적으로 테토적으로 설계되었다. 사랑받기보다 지키려 드는 여자, 머리가 좋으나 감정 표현은 건조한 여자, 강해 보이지만 묘하게 외로운 여자. 그녀의 연기 톤 자체가 ‘이두나’의 김진주와 다르다.
주인공을 해도 어색하지 않구나를 느끼게되면서 주인공의 반열에 첫 발을 디뎠다고 본다. ‘중증외상센터’에서의 역할은 주인공이 아니라고 생각했기때문에 비교하지않았다.
물론, 고은새가 기억을 찾으면서 갈등하나 없이, 너무 쉽게 상황을 받아드리는, 날위해 목숨을 건 남자면 무조건 믿어도 좋다는건 개연성이 떨어져보이는건 연기의 문제가 아닌듯해서 제외시켰고,
이 부분은 작품 자체의 분석이라기보다는 배우의 진척에 대한 시선임을 미리 밝혀둔다.

4. 아쉬운 점 — 홍콩 누아르의 그림자, 그러나 못 따라간 연출

제일 아쉬운 점이다. 개연성이 부족하다.
상길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도, 위에 말했던 고은새의 심리 묘사도 부족하지만
제일 부족한건 흐름이 끊기는 듯한 연출이 문제다.

4-1. ‘상길 조직’ 추격·액션 블록의 접합 불량

이 작품에서 가장 큰 비용을 들여야 할 블록은 분명 상길 조직이 추적해오는 각본 라인이다. 문제는, 이 라인이 등장할 때마다 로맨틱 코미디의 톤과 누아르의 톤이 서로 다른 접착제로 붙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고은새와 태하의 다정다감한 동거 신이 막 펼쳐진 직후, 이유 없이 상길 조직 보스들이 등장해 마을 어귀에서 렌치를 휘두른다. 그 다음 신에서는 다시 마을 주민들이 떡을 찧으며 정을 쏟는 신으로 돌아간다. 장면 사이의 인과가 아니라, 장면 사이의 분위기만 바뀌었기 때문에, 시청자의 주의는 끊임없이 재부팅된다.

옛날 홍콩 누와르 영화를 떠올려보면, 액션 블록은 로맨스 블록의 연장선이었다.

인물의 욕망과 결핍이 시간의 폭력으로 변형되는 과정을, 손 안의 총과 카메라의 워케이션으로 표현해냈다.

그런데 본작의 액션·추격 신은 외부에서 들이닥친 폭력으로서만 기능한다. 왜 그 폭력이 이 마을을, 이 두 사람을 향해 오는가에 대한 정서적 연결 고리가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키치처럼 보이거나, 오히려 액션 박스 자체가 작품 안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반복된다.

4-2. 액션·추격 신 들어올 때마다의 흐름 단절

사실 이 문제는 한 번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생긴다. 

극본에서 이를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이라면, 각 블록의 끝에서 다음 블록으로 넘어가는 다리를 놓아야 한다. 계속해서 카메라가 끊어버리고, 음악이 장르를 바꾸고, 조명만 다시 맞춰놓으면 시청자는 그것을 다리 위에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 믿음을 강제하는 순간 연출이 무너진다. 이작품은 그 강제를 너무 자주 요구한다.

4-3. ‘없는 듯 있는’ 홍콩 누와르 질감

작품 전체에 도배되어 있는 어두운 녹색, 비 내리는 골목, 머플러를 두른 여인, 그리고 살펴봐야 알 수 있는 불빛의 구도 — 그것들은 분명 90년대~2000년대 초 홍콩 누아르의 그것을 빌려온 것이다.

그러나 빌려온 것에 비해 실제 누아르로서의 톤 유지가 짧다. 로맨틱 코미디의 무게를 누아르가 감당하기엔, 폭력의 폭이 적고, 폭력의 이유가 박하며, 폭력을 견디는 인물의 내면이 얇다.

그래서 이 작품의 누아르 질감은 장식에 가까울 따름이며, 작품이 누아르적 선언을 한다기보다는 누아르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모습에 가깝게 읽힌다. 홍콩 누와르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위치를 아쉬워할 수밖에 없다.
고은새가 일본으로 밀항하는 장면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치는 장면에서 혹시 장태하를 태우고 도망치나? 천장지구의 오마주를 할생각인가? 하며 이불킥장면을 만들지 않을지 조마조마 하면서 보기도 했다.

홍콩 4대천황을 직접 느낀세대고, 영화도 많이 소비한 세대로써 이런식으로 홍콩 누와르 질감을 차용하면 안된다는 생각만 들었다.

5. 종합 — ”구조는 살아있는데 살이 안 붙는다’

총평을 굳이 한 줄로 적자면 이렇다. 모지혜 작가의 설계와 김장한 감독의 이미지 감각은 분명 이 작품을 단순 로코 너머로 끌고 갔다. 그러나 그 둘을 잇는 연출의 손이, 특히 액션·추격 구간에서 잦아들었다. 그래서 같은 장면을 봐도, 어떤 때는 감탄하고 어떤 때는 내가 뭘 놓쳤나? 화면을 멍하니 응시하게 된다.

  • 그럼에도 볼 가치가 있느냐? 그렇다. 이 작품은 분명 전개 속도가 빠른, 그리고 캐릭터의 호감을 끝까지 잃지 않는 작품이다. 고구마도 없고, 갈등이 나올려다가도 금방해소가 된다. 그리고, 10화에서 드라마다 끝나도 될게 설계했으나, 한번더 갈등을 주어서 끌고가는것도 나쁘지않았다.
  • 다만 기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가벼운 로코를 기대하면 과한 진지함에, 진지한 누아르를 기대하면 부족한 폭력에, 각각 ‘아 이게 왜 여기 있지?’라는 인상을 안긴다. 그 간극의 중심에 연출의 공백이 있다.

감독을 꿈꾸었던 사람으로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붙인다. 구조와 서사는 살았고, 나머지는 다음 작품으로 미뤄진 약속이었다. 김장한 감독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마이 데몬’을 지나 여기까지 왔고, 이 작품은 분명히 그의 손 안에서 더 분주하게 다듬어졌어야 했다.

그래도, 이 작품이 보여준 하영의 도약(논란은 차치하고), 그리고 엿마을이라는 폐쇄적 공간 안에 한국형 멜로의 정서와 누아르의 어둠을 동시에 응축하려 한 시도는, 다음 작품에서 좀더 다듬어서 만나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럴수 있을까? 란 의구심은 남는다. 그리고 하영도 괜찮은 여주의 발견이나 이번논란이 너무 쎄서 이어갈수 있을지가 잘 모르겠다.

감독을 꿈꾸었던, 지금은 40대 중반의 아저씨 후기 끝.


작성 참고: 본 리뷰는 작품 공개 직후 일반 시청자의 시각에서 작성되었으며, 배우 하영 관련 외부 논란과는 별개의 순수 서사·연출 평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일부 캐스팅·스태프 표기는 제작사 공식 자료를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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